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 제국군 (문단 편집) === 무기 === 카르피니는 몽골군의 군장에 대해 이렇게 썼다. >"모든 몽골군은 다음과 같은 장비를 소지해야 했다. 좋은 활 2~3개, 화살이 가득 찬 화살통 3개, 도끼, 밧줄, 투구와 흉갑이 그것이다.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병사는 휘어진 외날검을 썼다." 그러나 이것은 제국이 어느 정도 정비된 13세기 중반의 일이었고, 13세기 초 급격히 팽창해가던 몽골군이 어떤 장비를 썼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. 그래도 공통적인 의견은 그들의 주무기가 [[활]]이었다는 것이다. 몽골군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경기병이었고,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'''[[각궁]]'''이었다. 짐승의 뿔과 힘줄, 나무 등의 재료를 이어붙여 만든 복합궁으로 살상력이 뛰어난 위력적인 무기였다. 각궁의 최대 사거리는 약 300m 정도였지만 실전에서는 150m 미만에서의 사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. 티모시 메이는 몽골군의 기마사격을 [[카라콜]]과 비슷한 형태의 것으로 보았는데, 이 전술에서 전열은 적 부대 앞 50m까지 근접하기도 했다. [[활]]을 쏠 때 다른 유목민족과 마찬가지로 손에 [[깍지]]를 꼈다. 이는 시위에 손을 베지 않기 위한 것으로 활을 당기는 것을 좀 더 수월하게 해 주었다. 유럽의 활과는 달리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화살을 활의 오른쪽에 매겼는데 이렇게 할 경우, 명중률이 좋아진다고 한다. [[화살]]은 60개 정도를 휴대했으며, 장인이 만든 것도 있으나 병사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. 길이는 2피트(60.96cm) 정도로 프랑크인들의 화살보다 길었다. 화살촉은 쇠, 강철 등 금속제 이외에 짐승의 뼈나 뿔로 만들기도 했는데, 이렇게 만든 화살들은 전부 용도가 달랐다. 예를 들어 [[철갑탄|폭이 좁고 뾰족한 화살은 갑주 관통용]]이었고, [[할로우 포인트|폭이 넓은 화살은 갑옷을 입지 않은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한 것]]이었다. 촉을 뭉툭하게 만든 살은 [[비치사성무기|생포해야 하는 적을 쏠 때]] 사용되었다. [[파일:attachment/몽골 제국/군사/mongol.jpg|width=400]] 몽골군을 묘사한 삽화. [[http://pixgood.com/mongolian-lamellar-armor.html|픽스굿에서 캡처]] [[파일:attachment/몽골 제국/군사/mongolsu.jpg|width=400]] 몽골군의 군화. [[https://www.pinterest.com/pin/308496643199095606/|*]]안에 쇳조각을 넣어 발을 보호한다. 금속제 [[찰갑]]을 입기도 했으나 대개는 '''[[두정갑]]'''이나 층상형으로 만든 '''[[가죽 갑옷]]'''이 선호되었다. 이는 만들기 쉬웠던 점도 있으나 층상형 갑옷이 화살에 대해 높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. 모든 몽골인들이 갑옷을 입은 건 아니어서 후위의 부대원은 펠트로 된 외투만을 걸치기도 했다. 그래도 투구만큼은 금속제를 써서 강철로 만든 후에 동을 입혔다. 많은 피정복민들의 무기를 받아들였다.[* 때문에 "활을 제외하고는 전부 빼앗은 무기들이다" 라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. ~~활은 안 뺏었을까?~~] 그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부분은 공성무기의 발달이다. 13세기 초 몽골군에게는 공성전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았으나 13세기 중반 이후 중국으로의 남진이 본격화되면서 [[공성무기]]가 크게 발달했다. 투석기와 노포, 높은 누대가 동원되었으며, 특히 남송과의 전쟁에서는 아랍인들이 만든 [[트레뷰셋|신형 투석기]]가 활약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